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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줄거리, 역사 이야기, 관람 후기 기록한다.

by 은예하파파 2024. 4. 9.

영화포스터

줄거리

1987년 1월 대공수처장인 박처원에게 전화가 온다. 그의 부하들이 학생을 고문하다 그 학생이 죽었다는 소식이다. 학생이름은 박종철. 박종철의 시신은 옮겨지고 그 장면을 의사 오연상이 목격하게 된다. 박처원은 이 일을 조용히 지나가게 하기 위해 화장을 하라고 지시하고 화장을 하기 위해 검사에게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박처원의 부하들은 최환 검사를 찾아가 사망 경위서를 보여주며 화장 동의서를 요구한다. 죽은 지 8시간도 안된 학생을 부검도 없이 화장을 한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최환 검사는 이를 거부한다. 지속적인 요구와 압박이 강해지자 최환 검사는 오히려 시신 보존 명령서를 발부하고 이 정보를 동료 검사에게 알려 언론에게 전해주라고 한다. 그래서 관련 기사가 나고 박종철 어머니, 누나도 병원을 찾아가게 된다. 아들의 죽음을 알게 된 엄마와 누나는 오열한다. 대중의 관심이 커지자 안기부에서는 사태를 수습하고자 기자회견을 연다. 박처원이 작성해 준 내용을 보고 치안본부장이 발표하는 것인데 그 내용을 본 치안본부장은 쉽게 발표하지 못한다. 그래서 박처원이 직접 발표하는데 그 내용은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내용이다. 한 마디로 경찰 조사 중 '탁'하고 쳤는데 '억'하고 죽어버렸다.라는 무책임하고 근거 없는 발표인 것이다. 이 기자회견 중 박종철의 죽음을 목격한 의사 오연상의 이름이 드러나게 되고 박처원은 이 사건을 숨기기 위해 더욱 힘쓰게 된다. 대중의 관심과 최환 검사의 노력으로 시신 부검은 이뤄지지만 그 결과는 밝혀지지 않았고, 결국 박종철은 화장된다. 기자회견부터 관심을 갖고 조사하던 기자가 의사 오연상을 만나 물고문으로 인한 질식사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최환에게 부검 결과서를 받아 '물고문으로 인한 대학생 사망'이라는 기사를 내게 된다. 이에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 2명이 과실치사 죄로 잡혀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축소하려는 박처원의 계획으로 부하 2명을 준비시킨다. 1987년 4월 호헌조치가 발표되고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은 거세졌다. 그 와중에 대학생 연희가 등장하게 되는데 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최루탄으로부터 피하다가 한 남학생을 만나게 된다. 시위에 열심히 참여하는 그 남학생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연희는 삼촌의 부탁을 받게 된다. 연희의 삼촌은 현 정부를 대항하는 조직을 돕는 사람이었다. 박종철 사망사건과 관련하여 지금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한 소통을 하는데 삼촌은 연희에게 서류를 전달하는 부탁을 종종 했었다. 이번에도 역시 연희에게 부탁하게 되고 그 내용이 바탕이 되어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 신부들과 관련 사람들이 명동성당에 모여 발표를 하게 된다. 박종철 고문 사망 사건은 2명의 경찰이 아니라 5명의 경찰의 고문이 있었고 사건이 축소되어 발표되었다는 내용과 함께 상세한 사실들이 발표되었다. 전 국민이 사실을 알게 되어 수습하고자 해도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박처원과 비교적 평화적인 표정의 연희의 얼굴이 대조된다. 그러다 연희는 신문지 속에서 지난번 만난 남학생이 시위 도중 최루탄을 맞고 피 흘리며 죽어가는 사진을 보게 된다. 눈물을 흘리며 화를 참으며 시청 광장으로 나간 연희가 구호를 같이 외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역사 이야기

영화 <택시운전사>의 배경이 되는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대통령인 전두환 대통령은 영화 <1987>의 배경이 되는 1987년까지도 대통령이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시작으로 학생, 야당 정치인들,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민주화 운동이 많아졌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대통령 직선제였다. 전두환 정부는 국민이 직접 투표하는 직선제를 받아들이지 않다가 요구가 거세지자 헌법을 개정하기 위한 검토를 시작했다. 하지만 검토만 할 뿐 1987년 4월 13일 갑자기 '호헌선언'이 발표된다. 즉, 헌법을 검토만 했지 개정하지 않고 지키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이에 화가 난 국민들은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더욱 강하게 내기 시작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구호를 외치며 민주화 운동을 이어갔다. 호헌선언이 있기 전 일어난 박종철 물고문 사망 사건과 최루탄을 맞아 숨진 이한열 사건으로 그 분노는 커져만 갔다. 결국 1987년 6월 10일 전국 단위로 일어난 시위가 20일 동안 계속 되었다. 처음에는 학생들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시위가 시민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국민운동으로 발전했다. 회사원, 교수까지 동참한 이 시위에 굴복해 전두환 정부는 직접 선거를 실시한다는 내용을 포함하여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했다. 이를 근거로 헌법이 개정되었고 16년 만에 대통령을 직접 투표로 선출하게 되었다.

 

관람 후기

한국 영화 <1987>은 1987년에 일어난 한국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인물들과 장소, 사건들은 이미 알려진 내용이 많아 영화로 표현되었을 때 어떻게 제작될지 궁금한 마음으로 봤다. 1987년 일어난 사건에는 많은 관계자들과 정치적 입장들이 공존한다. 전두환 정부와 그에 반하는 야당 및 그 세력, 시위를 하는 학생들과 이를 걱정하거나 부담스럽게 느끼는 학생이 영화에서도 나타난다. 이런 복잡한 관계들을 영화에서 순서대로 정리해 빠뜨리지 않고 표현하려고 한 노력이 느껴졌다. 전두환 정부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박처원과 현 정부에 불만을 갖고 움직이려는 연희 삼촌과 김정남이라는 인물에 대한 설명이 영화 초반부터 끝까지 필요한 만큼의 분량으로 연출되었다. 그래서 단순히 고문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로 표현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 배경에 따라 전두환 정부의 간접선거와 독재정치에 대한 문제점을 계속적으로 나타내려고 한 것 같다. 박종철, 이한열과 같은 민주화 운동에 열정적인 학생들이 나오는가 하면 연희와 같이 친구와 놀러가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의 모습도 나타난다. 하지만 결국 연희도 눈물을 머금은 채 시청 광장에 나와 외치는 장면은 또 다른 감동을 준다. 기자들의 노력 또한 빛이 난다. 박처원과 정부는 사실을 숨겨 국민들의 눈을 가리려고 하는데, 진실을 파헤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으로 진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정부의 보도지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으로 보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는 자칫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 재미도 없고 지루할 거라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런 생각을 다 없애준 영화이다. 그 시절로 돌아가 함께 울고, 웃고, 화낼 수 있게 해준 영화로 기억된다.